교회 40년 다닌 장로님이 '처음 배웠다'고 하셨습니다

호주 이민교회에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온 시니어 성도들을 만나다 보면, 놀라운 장면을 자주 마주치게 됩니다. 수십 년을 예배에 나오고 교회를 섬겨 왔는데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구원이 정확히 무엇인지" 자신의 말로 설명하기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거든요. 저는 시드니에서 20년 이상 이민목회와 신학교육을 해 오면서 이 현실을 반복적으로 보아 왔습니다.
성장에 바빴던 교회가 놓친 것
한국교회와 이민교회 모두 성장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 왔습니다. 예배 출석 인원, 교회 규모, 프로그램 수—이런 것들이 교회 활력의 기준처럼 여겨진 시간이 길었지요. 이민 초기에 교회는 예배 공동체인 동시에 언어와 관계를 유지하는 생활공동체였으니, 행사와 친교 활동이 자연스럽게 중심을 차지했습니다.
그 사이에 하나님·인간·죄·구원·교회·성례 같은 신앙의 핵심 주제를 단계적으로 배우는 교리교육은 뒤로 밀렸어요. 개인의 열심 부족이 아니라, 교회의 교육 구조 자체가 그렇게 흘러온 겁니다.
몇 년 전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공부를 시작했을 때, 한 장로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교회를 40년 넘게 다녔는데 하나님과 구원을 이렇게 체계적으로 배워 본 것은 처음입니다." 또 한 권사님은 "교리공부를 하니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성경 말씀들이 하나로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라고 고백하셨고요. 솔직히 적지 않은 충격이었습니다.
"이 나이에 공부가 될까요?" — 시작 전 걱정들
처음 시니어 교리반을 열었을 때 걱정하시는 분들이 꽤 많았습니다.
- "교리는 너무 어렵지 않습니까?"
- "복잡한 신학보다 편하게 믿고 싶습니다."
- "이 나이에 공부가 될까요?"
그런데 몇 주가 지나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오히려 시니어들이 가장 진지하게 질문하고 토론했습니다. 젊을 때는 바빠서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주제들을 인생 후반기에 다시 마주하게 되니까요.
하나님의 섭리를 공부하던 시간에 한 권사님이 눈물을 흘리며 "이제야 하나님께서 제 인생을 왜 그런 길로 인도하셨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구원과 부활의 소망을 다루던 시간에는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웠는데, 이제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 마음에 더 분명해졌습니다"라는 고백도 나왔고요.
교리가 질병이나 상실을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 줍니다. 하나님의 섭리, 부활의 소망, 칭의와 성화의 교리—이것들이 삶의 고난을 해석하는 언어가 되거든요.
돌봄 받는 세대가 아니라 사명의 주체로
평균수명이 늘면서 은퇴 이후 삶이 20년 이상 이어질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시니어 사역이 친교모임·여행·건강강좌에만 머물러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저는 최근 교리공부와 성경통독에 독서, 인문학, 자서전 쓰기, 역사탐방, 봉사활동을 함께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신앙이 교회 안 종교 활동에만 머물지 않고 일상 전체와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은퇴 후 깊은 무기력감을 경험한 한 성도는 교리공부와 독서모임에 참여하면서 "인간의 가치는 직업이나 생산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데 있다"는 사실을 다시 배웠고, 이후 다른 시니어들을 돕는 봉사자로 새로운 역할을 찾았습니다.
최근에는 약 30명의 시니어들과 함께 케언즈 열대우림 지역을 탐방했습니다.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자연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묵상하고 서로의 인생을 나누는 시간이었어요. 한 참가자가 여행 후 "좋은 장소를 본 것도 감사하지만, 함께 늙어 가는 믿음의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위로였다"고 하시더라고요.
시니어는 교회 사역을 마친 세대가 아닙니다. 오랜 삶의 경험과 신앙의 기억을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있는 현재의 교회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자신이 무엇을 믿고 왜 믿는지 분명히 알아야 하고요. 결국 교리교육은 시니어 개인의 성숙만이 아니라, 세대 간 신앙 계승을 준비하는 교육이기도 합니다.
인생 후반기에 배움의 기회가 주어질 때 시니어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성장하는지, 저는 20년 넘게 직접 보아 왔습니다. 지금 다니시는 교회에 교리 공부 모임이 있다면, 한번 두드려 보시길 권합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이 정리될 거예요.
